20살 도전자, 석현준의 질주가 시작된다.
2023-08-09
2009년 7월 1일,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유럽으로 떠나는 만 18세의 청
년 앞에 선 아버지는 이 말을 전했다. "성공을 하지 못해도 네가 두려
움 없이 도전하겠다는 것만으로도 이 아빤 고맙다. 성공에 못 매달지
말고 네가 원하는 즐거운 축구를 하고 오거라. 노력하는 만큼 결과는
올 것이다."
아들이 답했다. "아빠, 저 죽어도 유럽에서 죽을 겁니다. 반드시 성공
할게요."
영입을 하겠다고 공언한 클럽도 없었고, 테스트를 받아주겠다고 확언
한 클럽도 없었다. 그야말로 맨몸 하나 믿고 유럽 무대에 부딪히려는
아들의 무모한 도전에 등을 두드려주는 것 외에는 해줄 것이 없었던
아버지였다. 하지만 청년의 가슴에는 유럽의 축구 선수가 되겠다는 꿈
을 향한 뜨거운 열정, 그리고 유년 시절부터 복서 출신인 아버지가 심
어준 끝 없는 용기와 근성이 있었다.
도전에 나선 지 1년이 지난 2010년 8월 30일. 유럽 최고의 클럽 중 하
나인 아약스의 일원이 되어 돌아온 그 청년을 기다린 것은 수 많은 미
디어의 카메라 세례였다. 이제는 대표팀의 일원으로 태극마크를 달아
한국 땅을 밟은 장한 아들을 기다리던 아버지는 190cm나 되는 커다란
아들을 껴안으며 말했다. "현준아, 고맙다. 사랑한다."
석현준. 유럽 최고의 클럽 중 하나인 아약스가 최초로 선택한 동양인
이자 한국인. 2010년 2월 석현준이 아약스와 정식 계약을 맺음으로써
한국 축구는 네덜란드 리그의 3대 명문(아약스, 페예노르트, PSV)과
모두 인연을 맺게 됐다. 하지만 그 3대 명문 중에서도 첫 손가락에 꼽
히는 아약스에 입단하는 한국인이 프로 경험도 없는 갓 고등학교를 졸
업한 19세 선수가 될 거라 상상한 이는 없었다.
석현준의 아약스 입단기는 유럽 내에서도 화제가 될 정도로 동화 같
은 이야기다. 그 꿈 같은 이야기를 현실로 만든 것은 석현준의 도전
의식이다. 도전은 젊음의 특권이다. 석현준을 만난 곳은 그가 유럽 진
출을 꿈꾸며 도전의 열정을 불태우던 안식처, 용인 FC였다.(인터뷰는
석현준이 대표팀에 소집되기 이틀 전인 8월 31일 이뤄졌다.)
PART 1. 첫 A대표팀 선발, 작은 성공을 안고 돌아오다
○ 19세에 태극마크를 달았다. ‘국가대표 공격수 석현준’이란 이전
보다 업그레이드된 타이틀로 한국에 들어설 때의 기분은 어땠나? 분위
기의 변화를 느끼나?(열띤 취재 경쟁 같은)
- 우선 기분이 좋았다. 처음엔 많이 놀랐다. 그렇게 많은 기자는 처
음 봤으니까.(웃음) 내가 서 있는 위치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됐던
것 같다. 스스로에게 자부심도 느꼈지만 더 열심히 노력해야겠다는 다
짐이 더 컸다.
○ 이번 A매치 데이에 한국에 오게 될 거라 기대했었나? 아약스는 대
부분의 선수가 각국 국가대표라 A매치 데이 때는 훈련장이 썰렁할 텐
데.
- 맞다. A매치 데이면 아약스 1군은 선수들이 거의 다 떠난다. 대표팀
의 부름을 받지 못한 아주 소수의 선수만이 남아 훈련을 한다. 나도
그 극소수였고. A매치 데이 때 아약스 훈련장이 아닌 파주 NFC로 가
는 날이 어서 오길 기대했었다. 그런데 이렇게 빨리 기회가 올 줄은
몰랐다.
○ 소집 요청 공문이 들어왔을 때 아약스 구단이나 동료들의 반응은
어땠나? 마틴 욜 감독은 어떤 얘기를 해주던가?
- 동료들에게 알리진 않았다. 첫 소집의 중요성을 알기 때문에 요란하
게 축하 받기 보다는 조용히 준비하고 싶었다. 대신 코칭스태프와 팀
매니저들은 공문이 온 걸 알고 있으니까 축하한다는 말들을 많이 해줬
다. 욜 감독님은 “가서 열심히 하되 다치지는 말고 오라”고 당부해
주셨다.
입국장에 들어오는 모습은 이전의 선배들과는 다른 느낌이었다. 캐주
얼 한 옷차림에 젊은이들이 가장 갖고 싶어하는 고가의 헤드폰을 목
에 건 그의 모습에선 젊은 유럽파다운 자유분방함과 여유가 묻어 났
다. 석현준은 "들어올 때부터 긴장은 안 했다. 처음 입국장에 나가면
이렇게 저렇게 해야지라는 생각을 하면서 즐거운 마음으로 입국했
다"며 요즘 10대다운 당당함을 보였다.
입국하는 그를 맞이하러 간 아버지 석종오씨는 많은 사람들 앞에서 아
들에게 키스를 했다. 한국 사회에서는 조금 어색하게 다가오는 부정
의 표시였다. 당시 키스 세례에 대해 석현준은 “아버지가 나를 너무
사랑하니까…”라며 웃음을 지었다. 석현준 역시 그런 장면이 보는 사
람들로 하여금 이상하게 느껴지리라는 걸 알고 있었지만 전혀 부끄럽
진 않았다. 아버지는 석현준에게 사랑을 나눌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
기 때문이다. 석현준은 중학교 1학년 때 부모님의 이혼으로 어머니,
여동생과 떨어진 채 아버지와 둘이 살아야 했다.
하지만 그는 내색 한번 없이 운동에 집중했고, 때론 아버지를 위로한
속 싶은 아들이었다. 석종오씨는 그때 생각을 하면 “아마 현준이는
나 때문에 사춘기가 없었을 것이다”라며 눈물을 글썽인다. 아픈 가정
사지만 그로 인해 석현준은 더 강해졌다. 기댈 곳이 적은 그가 믿을
것은 오직 자신의 실력뿐이었다. 친구들이 어머니를 찾을 때 그는 축
구공과 싸움했다. 그것이 석현준이 10대의 어린 나이에 유럽에 부딪
힐 수 있는 용기와 자신감, 실력을 만든 힘의 근원이었다.
○ 조광래 감독과는 첫 만남이다.
- 꼭 뵙고 싶었던 분이다. 조 감독님이 경남에서 특별한 성과를 냈다
는 걸 기사를 통해 알고 있었다. 감독님만의 남다른 철학이 있고 훌륭
한 지도방식이 있기 때문에 그런 성과가 나온다고 생각했다. 국가대표
팀에서 만나서 내게 어떤 것을 가르쳐주실 지 기대가 크다. 빠른 공
수 전환을 요구하고 열심히 뛰는 걸 좋아하신다고 알고 있는데, 그것
은 내가 가진 무기기 때문에 자신 있다.
○ 조광래 감독은 지난 나이지리아전에 소집한 어린 선수들 중 몇몇
선수를 탈락시켰다. 이번에 어필을 하지 않으면 10월 일본전에 자리
가 보장되지 않을 것인데.
- 잘하는 모습보다는, 나이가 제일 어리니까 최대한 열심히 하고 노력
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 그래야 감독님께서 좋아하실 것 같다. 특
히 그라운드 위에서는 즐기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 나뿐만이 아니
라 경기를 보는 모든 사람들이 즐거워할 수 있는 플레이 말이다.
○ 이번 합류로 네덜란드에서 성공적인 업적을 남긴 이영표, 박지성
두 선배를 만나게 된다. 네덜란드에서의 성공 노하우를 듣길 기대할
텐데?
- 당연하다. 특히 박지성 선배님의 경우는 네덜란드에서 힘든 시기를
넘어 좋은 시기를 맞이 했지 않나? 내게도 언젠가는 힘든 시기가 올
것이다. 그때 어떻게 극복해야 하는지, 좋을 때는 어떻게 평정심을 유
지하는 지를 꼭 듣고 싶다.
PART 2. 무모한 도박이 아닌 위대한 도전
나이 든 팬이나 기성 미디어에게 석현준은 아직 무명이라는 표현이
더 익숙한 선수다. 대부분의 팬들은 10대와 20대의 젊은 층이다. 인터
넷에서 먼저 불어 닥친 석현준 열풍을 보며 일각에서는 ‘인터넷 스
타’라고 폄하하기도 했다. 하지만 석현준이 영화 같은 이야기로 아약
스 입단에 성공하고 1군 무대에 데뷔하면서 그는 한국뿐만이 아니라
유럽에서도 주목하는 선수가 됐다. 석현준은 “인터넷에서 나에 대한
스페샬 영상 같은 걸 볼 때마다 굉장히 큰 힘이 된다. 내가 저런 플레
이를 할 수 있는 선수구나라는 자신감이 생긴다. 인터넷을 통해 응원
하는 많은 분들로 늘 내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고 말했다.
이제는 많은 이들이 알게 된 이야기지만 석현준은 아약스 입단은 다
시 봐도 드라마틱하다. 처음 그가 유럽에서 두드린 무대는 잉글랜드였
다. 하지만 첼시 입단 테스트가 좌절된 뒤 석현준은 네덜란드로 향했
다. 막연하게 아약스 훈련장을 찾았던 그는 주차장에서 마틴 욜 아약
스 1군 감독을 만나게 된다. 팬인 것처럼 사진촬영을 요청하던 그는
용기를 내서 “1분만 시간을 달라”고 했고 한국에서 온 축구 선수인
데 테스트를 받고 싶다고 했다. 어이가 없어하던 욜 감독은 “보험은
들었냐”고 반문하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한 번만 기회를 달라고 매달
리는 석현준을 보던 욜 감독은 다음날 연락하겠다며 그를 돌려보냈
다.
거짓말 같이 다음 날 오전 석현준은 유소년 팀과의 경기에 나갈 수 있
겠느냐는 연락을 받았다. 한 달음에 달려간 그는 전철에서 내린 뒤 비
를 맞으며 2㎞를 전력질주했다. 그에게 주어진 건 연습 경기 2𔅗쿼
터. 이 기회를 잡아 유럽에서 살아 남겠다는 정신력으로 뛴 그는 골
을 넣으며 2군 감독이던 피터 하우스트라의 마음을 사로 잡았다. 이
후 한국에 돌아와 아약스의 연락을 기다리다 지친 그는 J리그 오미야
아르디자 입단을 위해 출국하려 했다. 하지만 출국을 위해 공항으로
가는 그에게 네덜란드에서 연락이 왔다. “정식 계약을 하자.” 석현
준의 모토인 죽기살기의 도전 정신이 아약스의 마음을 흔든 것이다.
○ 석현준이라는 선수의 가치를 바꿔준 것은 역시 아약스라는 타이틀
이다. 그리고 아약스에 입단하게 된 스토리가 어찌 보면 비현실적이었
다.
- 골!(GOAL!)이라는 축구 영화 속 주인공 이야기가 나랑 닮은 거 같
다. 나는 언제나 잘 될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다. 아니, 유럽에서 성
공 못하면 안 된다는 절박함이 컸다. 죽기살기로 도전해서 유럽에서
살아 남겠다. 죽어도 유럽에서 축구를 하다가 죽겠다는 각오가 있었
다. 작년 7월 한국을 떠나면서 유럽에서 무언가를 하지 않으면 절대
한국에 돌아가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길거리에서 축구를 하며 버티더
라도 유럽 팀과 계약을 하겠다고. 무엇보다 나 자신을 믿었고, 그 믿
음 속에서 내가 가진 기량과 진심이 유럽에서도 통한 것 같다.
○ 주차장에서 마틴 욜 감독에게 입단 테스트를 부탁할 때의 무대뽀
정신은 대단하다. 지금 그렇게 하라고 해도 다시 할 수 있겠나?
- 지금도 그렇게 할 거다. 그때의 감정을 잊은 적이 한 번도 없다. 그
런 상황이 다시 오지 않으리라 법은 없다. 만일 내가 앞으로 아약스에
서 못하면 팀을 나갈 수도 있다. 다시 그런 상황이 온다 해도 똑같이
들이댈 거다.(웃음)
○ 2010년 2월 3일은 석현준의 인생에서 잊지 못할 날이었다. 로다JC
와의 홈 경기. 출전 명단에 포함된 석현준은 후반 30분 투입을 준비하
라는 지시를 받았다. 5분 여 동안 몸을 푼 그는 욜 감독의 신호를 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