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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밀리 월드컵] '허정무의 아이들' 이승렬 부친 이상군씨

2023-08-08

이승렬(21ㆍ서울)은 '허정무의 아이들' 중 한 명이다. 허정무 감독이
과거 센터장을 맡았던 시절 용인축구센터 1기생이었다. 허 감독이 공
들여 터를 닦은 용인축구센터에서 중-고교(원산중-신갈고) 시절 축구
를 배웠다.

그런 이승렬이 2008년 K-리그 신인왕, 2009년 U-20 월드컵 청소년대표
로 무럭무럭 성장했으니 허 감독은 얼마나 뿌듯했을까. 허 감독은 최
근 이승렬을 남아공월드컵 최종 엔트리(23명)에 선발했다. 뿌린 씨앗
을 알차게 거두는 셈이니 감회가 새로울 듯 하다.

▶ 허 감독에게 퇴짜 맞은 사연

이승렬의 아버지 이상군씨에게 "허 감독과 오랫 동안 참 좋은 인연을
맺어왔네요"라고 아들의 월드컵 참가를 축하했다. 그러자 "잘 해드린
것도 없는데 아들을 잘 봐주시니 (허 감독에게) 그저 고마울 뿐 입니
다"라고 이씨는 말했다.

그러면서 이씨는 허 감독이 아들에게 '무조건적인 사랑'을 보낸 것은
아니라며 선을 그었다.

이씨는 "(이)승렬이가 고3 때 프로로 진로를 결정했다. 내심 승렬이
를 어릴 때부터 키워 온 허 감독이 계시는 전남에서 연락을 주길 바랐
다. 한데 반응이 시원치 않아 속을 끓였었다. 나중에 언론을 통해 허
감독이 2007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승렬이를 뽑으려고 했는데, 서울이
이 사실을 알아채고 먼저 뽑았다고 하던데, 사실과는 좀 다른 얘기"라
고 했다.

하지만 전남이 아닌 서울 유니폼을 입은 것은 전화위복이었다. 이승렬
은 서울에서 입단 첫해인 2008년 K-리그 신인왕을 타며 주머니 속 송
곳의 모습을 보였다.

허 감독은 2007년 신인 드래프트가 끝나고 얼마 되지 않아 전남을 떠
나 대표팀 사령탑으로 부임했다. 만일 허 감독이 1순위로 이승렬을 뽑
았더라면 이승렬은 허 감독이 없는 가운데 전남에서 프로 생활을 시작
했을 것이다.

전남에서 지금의 이승렬처럼 성장했으리란 장담을 할 수 없는 일이
다. 허 감독은 서울에서 기량이 쑥쑥 성장한 이승렬을 꾸준히 지켜보
다가 마침내 올해 초 대표팀에 뽑았고, 최종 엔트리에 포함시켰다. 묘
한 인연이다.

▶ 유달리 유쾌하고 당찬 까닭

이승렬은 2008년 세뇰 귀네슈 전 서울 감독과 처음 마주한 자리에
서 '하고 싶은 말을 해봐라'고 하자 "주전으로 뛰게 해달라"고 말해
순간 모두를 당황하게 만들었다.

한번은 경기 중 교체당한 뒤 벤치를 지나가다가 귀네슈 감독을 바라보
며 '왜 나를 교체했나'란 의미로 입을 실룩거리며 어깨를 으쓱해 보이
기도 했다. 터부시되는 행동이자 갓 고교를 졸업한 여느 선수에게서
는 찾아볼 수 없는 '돌발 행동'이었다.

아버지 이씨는 "승렬이는 그렇게 축구를 배웠다"고 했다. 무슨 말인
가 해서 자세히 들려달라고 했다.

이씨는 "창단 클럽인 용인축구센터에 입학시킨 데에는 몇 가지 이유
가 있었다. 허 감독을 비롯한 코칭스태프의 코칭 마인드였다. 창조적
인 축구를 할 수 있게끔 자유로운 분위기를 만들어 준다는 게 마음에
들었다. 조용하던 아이가 그때부터 집에서 말도 많이 했던 것 같
다"고 말했다.

이씨는 용인축구센터의 자유분방함에 두번 놀랐다. 경기 중 프리킥 기
회가 났는데, 아이들이 서로 자기가 차겠다고 다투더니 가위바위보를
하는 장면이 나왔다. 기가 차는 한편 독특한 팀 분위기를 알 수 있게
해준 기회였다.

고교 때 맨유 프리미어컵에 참가하기 위해 맨체스터에 갔을 때 선수
전원이 머리카락을 노란색으로 염색했던 일도 충격이었다. 훗날 이씨
는 코치로부터 "외국 선수들에게 꿀리지 않게 하기 위해 머리색부터
똑같게 한 것이었다"는 설명을 듣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씨는 "그라운드 위에서 승렬이의 튀는 행동이 욕 먹을 때도 있는
걸 안다. 하지만 경기장 밖에서는 깍듯하게 예의를 지키는 아이"라고
설명했다.

▶ 축구화에 새기는 '승'의 비밀

지난 5월초 월드컵대표팀에 합류하기 위해 파주NFC에 입소한 이승렬
은 한 가지 징크스를 공개해 화제를 모았었다. 축구화 깔창에 자신의
이름 가운데 글자를 따서 '승'(昇)을 새겨넣은 것이었다. 당시 이승렬
은 취재진이 몰려들자 "축구화에 '승'자를 새기면 자신감이 생긴다"
고 둘러댔다.

하지만 속사정은 그게 아니었다. 이씨는 아들이 '승'자를 새겨넣은 것
은 어릴 적 축구화 분실을 막기 위한 조치였는데 지금까지 버릇으로
남아있는 것이라고 했다.

초등학교 때 20~30명과 함께 숙소 생활하는 아들이 10만원이 훌쩍 넘
는 축구화를 잃어버릴까 염려해 뭔가 표시를 하라고 당부했고, 승부욕
이 강했던 어린 이승렬은 승리를 뜻하는 '승'(勝)을 축구화 마다 적어
넣었다.

이씨는 "'세살 버릇 여든 간다'고, 이제는 축구화 잃어버릴 걱정 하
지 않아도 되는데 승렬이가 아직도 '승'자를 새기고 있는 걸 보면 역
시 버릇, 습관은 중요한 것 같다"며 껄껄 웃었다.

▶ 하늘로 떠난 할머니와의 약속

위기는 때로 쓰나미처럼 한순간에 몰려든다. 엘리트 코스를 밟으며 승
승장구하던 이승렬도 절망을 경험한 바 있다. 지난해 10월 끝난 U-20
월드컵에서 생애 처음 쓴맛을 봤다.

이승렬은 당시 카메룬과의 조별리그 1차전에 선발 출격했지만 무기력
했다. 이후 주전에서 밀려나며 홍명보호의 '8강 쾌거'를 주연이 아닌
조연으로 씁쓸하게 즐겨야 했다. 그 와중에 지병을 앓던 친할머니가
돌아가셨다. 부모는 가뜩이나 주전에서 밀려 속앓이할 아들이 염려돼
이 사실을 숨겼다. 이승렬이 귀국하던 날 공항에서 알려줬다.

평소 할머니 사랑이 대단했던 이승렬은 "왜 안 알려줬냐"며 부모에게
버럭 화를 냈고, 그 길로 할머니 묘소로 향해 선전을 다짐했다고 한
다. 이승렬은 지난 5월8일 어버이날, 부모님과 함께 한번 더 할머니
묘소를 찾아 월드컵을 앞두고 각오를 다졌다.

할머니가 손자의 마음을 읽은 것일까. 할머니는 그로부터일주일 뒤
열린 에콰도르전 당일, 두살 터울 누나의 꿈에 나타나 골을 암시했
고, 이승렬은 어김없이 골로 연결했다. 아버지 이씨는 "승렬이가 할머
니의 기운을 받아 월드컵에서도 좋은 활약을 펼쳤으면 좋겠다"고 말했
다.



 관리자 ()  10-06-08 17:00  2,960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