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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보경, 군것질 유혹에 축구 선택

2023-08-08

등번호 14번을 단 박지성이 나오고 김보경이 들어갔다. 박지성의 7번
유니폼을 입은 김보경이 투입되자 그라운드의 공기가 바뀌었다. 활발
한 움직임으로 공격에 활로를 불어넣었다. 후반 종료 직전에는 박주영
에게 날카로운 전진패스를 배달, 페널티킥을 얻어내도록 도왔다.

지난달 24일 사이타마 2002 스타디움에서 열린 한·일전에서 김보경
이 뛴 시간은 15분 남짓. 짧다고 할 수도 있지만 허정무 감독이 마음
을 굳히는 데는 충분한 시간이었다. 23인을 발표하는 자리에서 취재진
은 김보경의 발탁을 두고 '의외'라는 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허 감독
은 이미 8년 전 될성부른 나무의 떡잎을 발견했다.

* "170cm만 넘으면 됩니다"

신복주 영서중학교 감독(당시 오류초등학교 감독)은 김보경을 처음 봤
던 날을 또렷이 기억한다. "또래 아이들보다 한 뼘 이상 키가 작았어
요. 그런데 볼 다루는 기술을 보니 보통내기가 아니더라고요. 축구를
제대로 배워본 적도 없는 10살짜리가 그 자리에서 리프팅을 50개 넘
게 하더라고요."

신감독은 그날로 아버지 김상호(54)씨를 찾아가 설득에 들어갔다. 아
버지는 단호히 반대했다. "키가 저렇게 작은데 운동선수가 될 수 있겠
느냐"며 손사래를 쳤다. 신 감독은 전략을 바꿔 김보경을 직접 구슬렸
다. 떡볶이,아이스크림 등 군것질거리에 소년은 금세 마음을 굳혔다.

자식 이기는 부모는 없다고 김 씨도 마지못해 허락했다. 그러나 원삼
중학교에 진학한 아들이 좀처럼 출전 기회를 잡지 못하자 아버지는 애
가 탔다. 당시 용인축구센터 산하의 원삼중학교에는 이승렬(서울)·박
준태(울산)·김다빈(대전) 등 또래에서 국내 최고로 꼽히는 이들이 차
고 넘쳤다.

전학을 고민하던 아버지의 마음을 돌린 것은 허정무 당시 용인축구센
터 총감독이었다. 허 감독은 "키가 작다고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170cm만 넘으면 어느 포지션에 갖다 놔도 두각을 나타낼 겁니다"고 안
심시켰다. 탄탄한 기본기를 믿었기 때문이다.

정광석 용인시청 감독(당시 원삼중학교 감독)은 "물론 승렬이가 잘했
지만 실내 체육관에서 테니스공으로 2-2 미니게임을 하면 늘 보경이
가 있는 팀이 이겼다. 친구들이 서로 보경이와 팀을 맺어달라고 난리
였다"고 기억했다.

허 감독의 말대로 키가 170cm를 넘어서자 거칠 것이 없었다. 지난해
이집트에서 열린 U-20 대회에서 2경기 연속골을 넣으며 팀을 8강으로
이끌었다. 여세를 모아 올해 초 잠비아전에서도 무난한 A매치 데뷔전
을 치렀다. 남아공 전지훈련기간 대표팀 연습경기에서 골 맛을 보더
니 동아시아대회에서는 박지성의 빈자리를 꿰찼다. 홍콩전에 터진 5
골 중 3골이 그의 발끝에서 시작됐다. 현재 김보경의 키는 178cm다.

* 축구밖에 모르는 축구 바보

김보경은 박지성과 여러모로 닮았다. 대학재학 중 일본으로 건너가 J2
리그에서 프로무대에 데뷔했다는 점, 왼쪽 측면 미드필더라는 것이 그
렇다. 8년 전 박지성이 대표팀 막내로서 생애 첫 월드컵 무대에 선 것
처럼 같은 나이에 남아공 월드컵을 준비하고 있다.

무엇보다 둘의 공통점은 축구밖에 모른다는 것이다. 학창시절 김보경
은 합숙훈련이 끝난 뒤에도 혼자 운동장에 남아서 공을 찼다. 오죽하
면 아버지가 "방학 때면 친구들도 좀 만나고, 놀러다녀라"고 했을까.
그럴 때마다 김보경의 대답은 늘 같았다. "대학가면 시간 많대요. 그
때까지는 축구만 할래요."

대학생이 된 뒤에도 그는 변하지 않았다. 지난해에는 20세 대표팀 훈
련으로 1년 내내 거의 쉬는 날이 없었다. U-20 대회가 끝나자 올림픽
팀에 소집됐다. 12월 일본 올림픽과 평가전을 치른 다음날. 기자는 그
에게 전화를 걸었다.

모처럼 얻은 꿀맛휴가를 즐기고 있을 것으로 생각했지만 그의 휴대폰
을 받은 사람은 아버지였다. "보경이 동네 학교 운동장 나갔습니다.
다음주에 허정무 감독이 국가대표 예비명단에 든 선수들 체력테스트
를 한다고 하는데 준비를 해야 한다고 하더라고요."

크리스마스 연휴가 끝나자마자 파주NFC에서 1박 2일간 실시된 체력테
스트에서 그는 쟁쟁한 선배들을 제치고 상위권에 올라 생애 처음으로
A대표팀 명단에 포함됐다. 그리고 월드컵 최종엔트리에 들어 전문가들
까지 깜짝 놀라게 했다. 그는 8년 전 포르투갈전에 나섰던 박지성처
럼 16강 진출을 결정짓는 결승골을 터트린 뒤 허정무 감독에게 달려
가 안기는 자신의 모습을 상상한다. 



 관리자 ()  10-06-08 16:17  2,355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