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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청춘] 김호 용인시축구센터 총감독

2023-08-09

축구인생 후반전 ‘또다른 도전’… 꿈나무 육성 다시 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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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의 축구인생’을 시작한 김호 용인시축구센터 총감독이 자신의 교육관을 설명하고 있다. 전형민기자 

 

“내가 어렸을 땐 전문적인 지도자도 없고 환경도 좋지 못했어. 그래서 생각했지. 내가 좋은 선수가 된다면 유소년 육성을 한번 해보겠다고.” 지난달 23일 용인시축구센터 총감독으로 부임한 김호(71) 전 축구 국가대표 감독은 대한민국 축구계의 ‘명장’으로 손꼽힌다.

1970년대 국가대표로 활약하며 아시아 최고의 수비수로 이름을 떨친 김 감독은 1975년 모교인 부산 동래고에서 지도자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이후 세계청소년대회 코치(1979년), 실업축구 한일은행 감독(1983~1987년), 프로축구 울산 현대 감독(1988~1991년), 미국 월드컵대표팀 감독(1992~1994년), 수원 삼성 감독(1995~2003년), 대전 시티즌 감독(2007~2009년) 등 고교, 실업, 프로, 국가대표팀을 넘나들며 선수 시절보다 더 화려한 지도자로 최고의 전성기를 보냈다.

60여년 동안 둥근 공 하나로 인생을 살아왔으나 아직도 할 일이 많이 남았다고 말하는 김 총감독. 고희(古稀)를 넘긴 나이지만 한국축구 꿈나무 육성이라는 새로운 목표를 갖고 용인축구센터에서 ‘제3의 축구인생’을 시작한 그를 지난 달 30일 만났다.

 

■ 라디오 중계가 인연이 된 축구인생
김 총감독과 축구의 인연은 195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유년시절부터 운동에 소질이 있어 육상 선수로 활동했던 그는 통영 두룡초 4학년 때 처음 축구를 시작했다.

김 총감독은 “불행인지 행운인지 모르지만 라디오에서 방송한 아시안게임 축구 중계를 처음 듣고 ‘축구선수가 되야겠다’고 다짐했다”며 “처음 학교 축구부에 찾아갔는데 달리기도 빨랐지만 다행히 발도 잘 써서 그 길로 축구를 계속하게 됐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두룡초와 통영중을 거쳐 축구 유학을 떠나 부산 동래고를 졸업한 뒤 실업축구 제일모직 축구단에 입단한 김 총감독은 21살 때인 1965년부터 9년간 태극마크를 달고 아시아 최고의 수비수로 명성을 떨쳤다.

각종 국내·외 대회서 우승컵을 들어올리며 화려한 선수시절을 보낸 그는 1975년 모교인 동래고에서 지도자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김 총감독은 “내가 운동했을 때는 전문 지도자 없이 우리가 성장했기 때문에 후배들을 육성한다는 생각으로 모교인 동래고에서 처음 감독을 맡았다”라며 “그시절이 정말 보람 있었고, 故 정용환과 최덕주, 윤성효 등 많은 대표선수를 육성하면서 노력하면 이루어진다는 것을 느꼈다”고 말했다.

김 총감독은 수많은 팀의 지휘봉을 잡았지만 월드컵대표팀과 프로축구 K리그의 명문팀 수원 삼성을 맡았을 때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설명했다.

1994년 미국월드컵 본선에 진출하기까지 우여곡절이 많았다는 그는 “당시 한국은 프로구단이 6개 팀에 불과했다. 월드컵대표팀 감독을 맡았을 때 준비 기간이 너무 짧은데다 유명무실했던 대표팀을 프로와 대학팀 선수로 급하게 꾸려 월드컵에 나섰다”고 밝혔다.

이어 “감독으로서는 한 팀을 특정해 반드시 승리한다는 것보다 어떻게든 본선진출을 노렸지만 일본과의 지역예선에서 패했다는 이유로 국민과 언론으로부터 많은 비판을 받았다. 물론 생각의 차이가 있었던 것”이라고 돌이켰다.

이어 김 총감독은 “본선에 올라 비록 2무1패로 조별리그에서 탈락했지만 그 때 선수들이 최선을 다해줘 ‘아시아도 월드컵에서 할 수 있다’라는 가능성과 강한 인상을 심어줬다”고 회상했다.

이후 1995년 수원 삼성의 초대 사령탑으로 취임한 그는 창단 이듬해부터 각종 대회에서 상위권에 오르며 신생팀의 돌풍을 일으켰고, 1999년 정규리그를 포함해 4개 대회 우승컵을 모두 휩쓸며 수원을 일약 ‘명문 구단’으로 이끌었다.

■ 제3의 축구인생…새로운 목표
선수로서 첫 축구인생을 살았고, 성공한 지도자로 제2의 인생을 보낸 그는 2009년 6월 대전 시티즌을 끝으로 프로팀 감독에서 은퇴한 뒤 다음해 통영으로 귀향해 젊은 시절부터 생각해왔던 유소년 꿈나무 육성에 나섰다.

열악한 환경에서 축구를 해온 만큼 축구선수로서 성공하면 봉사하는 마음으로 유소년을 육성하겠다는 생각이 마음 속에 크게 자리 잡고 있었다. 처음 감독직을 프로팀이 아닌 동래고에서 시작한 것도 이 때문이었다.

  
   

그는 “14만 인구의 작은 도시 통영에서 유소년들을 지도하며 국내 최고의 시설을 갖춘 용인시축구센터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었다.

100만 인구에 육박하는 용인은 인재 육성을 위한 최상의 조건을 지녔고, 내 뜻과 정찬민 용인시장을 비롯한 용인시축구센터 관계자들이 갖고 있는 뜻이 잘 맞아 이곳에 오게 됐다”고 총감독직을 수락한 배경을 설명했다.

김 총감독에게 유소년 육성에 있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점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그는 ‘인성’이라고 답했다. “당연히 인성이다. 사람은 가장 먼저 더불어 산다는 것을 배워야한다.

인성을 갖춰야만 모두에게 인정받는 선수가 될 수 있다.”김 총감독은 자신의 교육관을 설명한 뒤 앞으로의 목표에 대해서도 뜻을 내비쳤다. 인재 육성을 위해 용인시축구센터 총감독이라는 중책을 맡은 만큼 용인을 대표하고 자랑할 수 있는 많은 우수 선수를 발굴·육성하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겠다는 것.

더 나아가 국내 현실에서는 어려움이 있지만 최고의 인프라를 갖춘 용인시에 프로구단이 창단하길 희망한다고 밝혔다. 김 총감독은 “유럽의 경우 30만 인구의 도시에서도 프로구단을 창단해 축구 꿈나무들에게 꿈과 희망을 심어주고 있다.

스포츠를 통해 문화를 배우고 함께 응원하며 응집하고, 소속감을 갖고 자신이 응원하는 팀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물론 국내 현실에 맞지 않는다는 것은 알지만 모든 인프라가 구축된 용인에 프로구단이 없다는 것은 너무아쉬운 점”이라고 말했다.

김 총감독은 축구란 자신의 철학이라고 소개했다. “축구는 내 인생에서 가장 재밌고 즐거운 삶의 원동력이다. 여러 사람이 모여 땀 흘리며 뒹굴고, 서로 웃고, 천진난만한 그런점이 너무 좋다.

슛을 해서 골망이 철렁할 때 그 쾌감은 말로 표현할 수 없다. 축구는 내 인생의 전부 이자 철학”이라고 생각한다. 자신을 그냥 평범한 축구인이라고 말하는 김 감독은 평생을 축구에 몸 바치며 한국 축구 발전을 위해 헌신했지만 아직 해야 할 일이 많이 남았다고 말했다.

“유소년 꿈나무를 육성한다고 마음먹었으니 앞으로 한 100년은 더 해야겠죠”라고 웃으며 말하는 그를 보니 한국 축구의 미래가 기대된다. 그리고 새롭게 축구 청춘을 시작한 그의 인생이 영원하길 바란다.

홍완식기자

 

 관리자  15-07-03 13:44  

[출처] http://www.kyeonggi.com/news/articleView.html?idxno=990565